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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ABC] 엉덩이 가벼운 당신을 위한 '음악회 중 딴짓하기' 가이드 ( 조선일보 2008년 10월 2일 목요일 A22면 )
김성현 기자   

지휘자의 얼굴은 이미 땀에 흠뻑 젖었고,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에는 한 치 빈틈조차 없어 보입니다. 그 열정에 한껏 빠져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본디 '몰입'보다는 '잡념'과 친숙한 것이 우리의 간사한 속성입니다. 콘서트에서 좀처럼 집중하기 힘들어하는 관객을 위한 '음악회 도중 딴짓하기' 가이드입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관현악 연주회라면, 단원들의 숫자를 천천히 세어 보십시오. 전체 총원만이 아니라 ▲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더블베이스(현악)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바순(목관) ▲트럼펫·트롬본·호른·튜바(금관) ▲팀파니(타악기)의 순서로 악기별로 꼼꼼히 세다 보면 시간 정말 금세 지나갑니다.
'초급 과정'에서는 도중에 숫자를 잊어먹기도 하고 비올라가 바이올린보다 큰지, 트럼펫과 트롬본은 어떻게 다른지도 알아채기도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악기 사진을 보면서 '바를 정(正)'자와 손가락을 이용해서 세다 보면, 어느새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의 2악장에서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하는 독주 악기(잉글리시 호른)가 무엇인지, 말러 교향곡 1번에서는 호른이 몇 대(통상 7대)나 동원되는지 점차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 '고급 과정'에 이르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에서 피아노 연주자가 갑자기 자리를 옮겨 앉아서 연주하는 악기(첼레스타)나 메시앙의 〈투랑갈릴라 교향곡〉에서 피아노 맞은 편에 놓여있는 괴상한 전자 악기(옹드 마르트노)가 무엇인지도 알게 됩니다. 한 마디로 오케스트라의 '편성'에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작품을 구성하는 악장의 숫자를 체크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관현악이든, 실내악이든, 독주회든 통상적으로 한 악장이 끝나면 연주자는 잠시 숨을 고릅니다. 이 틈을 이용해 관객들은 참았던 기침을 하고, 반대 방향으로 다리를 꼬며, 프로그램을 넘겨 읽기도 합니다. '초급 과정'을 통과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지요.
하지만 악장과 악장 사이를 끊지 않고 이어서 연주하는 경우에는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처럼 프로그램 안내에는 분명 5악장이라고 써있는데, 우리 귀에는 3~4악장만 있는 것처럼 들리는 경우가 대표적이지요. 4악장의 '폭풍우'가 언제부터 몰아쳤다가 언제 다시 멈추는지 곡의 내용을 이해해야만 악장 구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역시 서정적인 2악장에서 힘차고 경쾌한 3악장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미묘한 긴장감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중급 과정'을 거치고 나면, 최상 난이도의 '고급 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대표적입니다. 이 곡은 첫 곡 아리아(aria)가 마지막에 다시 반복되고 그 사이에 30곡의 변주가 들어있습니다. 내가 마음 속으로 세어본 변주의 숫자가 실제 변주와 정확히 일치할 정도에 이르면 그분은 이미 '고수(高手)'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이렇듯 때로는 '딴짓'마저 음악 실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는, 유쾌한 공간이 바로 음악회장입니다. 이젠 더 이상 지루해서 애꿎은 몸만 비비 꼬지는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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