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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야금 산조에 대하여...

 

산조는 서양식으로 얘기 하자면 일종의 조곡이라고 할 수 있다.

[* 조곡 (組曲) = 모음곡 = [음악] 몇 개의 소곡 또는 악장을 조합하여 하나의 곡으로 구성한 복합 형식의 기악곡.}
말하자면 독립된 몇개의 곡이 연결되어 하나의 곡을 이루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서양의 조곡이 음악적으로 별다른 연관이 없는 개별곡들의 나열식
집합인 것에 반해 산조는 전체적으로 정서적 감흥의 점진적 고양이라는
의도에서 묶여진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이다. 그리고 각각의 곡들은 다른
전통음악이 그래왔던 것 처럼 역시 '장단'을 단위로 나뉘어진다.

우리 전통음악에 있어서 장단이란 서양음악의 박자와 같이 단지 박을
나누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장단은 이미 그것에 실리는 가락의
모습을 결정하고 있다. 장단에 있어서의 긴장과 이완은 가락에 있
어서의 긴장과 이완을 유도하고 있다. 장단이 옥죄는데, 가락이 풀어
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산조는 진양조 - 중모리 - 중중모리 - 자진모리 - 휘모리를 그 기본틀로
하고 있는데, 이러한 장단 배치는 일종의 점층법이라고 할 수 있다.
느린 진양에서부터 빠른 휘모리에 이르기까지 산조는 듣는 사람의 마음이
단 한 순간도 다른 곳으로 흐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토록 치밀하게 짜여진 것이다. 그러나 산조의 진정한 멋은 뭐니뭐니
해도 역시 소리가 넉넉하게 채워질 공간이 많은 진양에서 찾을 수 있다.

진양은 연주자의 기량이 가장 적나라하게 판가름나는 악장이며,
그래서 연주자에게는 더욱 곤혹스러운 악장이기도 하다.

산조의 역사를 얘기하자면 19세기 말에 활동했던 가야금의 명인 김창조
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까 모든 산조 중에서 가야금 산조가 가장
먼저 생긴 것이다.

가야금 산조가 오늘날 음악적으로 가장 완성된 틀을 갖추고 있고, 또
그토록 다양한 유파를 가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산조가 다른
악기가 아닌 바로 가야금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 악기가 전통악기
중에서 가장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가야금 산조의 유파는 여러 개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금연 류와 김죽파 류, 그리고 함동정월 류라고 할 수 있다.

성금연 류는 우선 곡의 붙임새와 구성이 좋으면서도 듣기에 편해서
가야금 산조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진양의 경우에도
장단의 붙임이 난해하지 않아서 장단의 흐름을 쉽게 탈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저음역의 가락이 많이 들어가 품위가 느껴지는 그런 가락을
가지고 있다.

김죽파 류 가야금 산조는 한마디로 말해서 깔끔하다고나 할까. 음악의
붙임새가 단순해서 다소 싱겁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는 물론
듣는 이의 미적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겠지만 여하튼 진양에서
소리의 공백이 많고, 끝까지 소리를 붙들고 늘어지려는 승부근성이 부족
한 것이 사실이다.

고음역의 가락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도 김죽파 류 산조의 또 다른 특징
인데, 따라서 풍부한 여음에서 오는 진국의 맛을 별로 느낄 수 없다.
이는 죽파 류 산조가 민속악이면서도 그 미적가치의 기준을 정악적인
절제미에 두고 있기 땡문인지도 모른다.

함동정월 류 산조는 가야금 산조 중에서 가장 완벽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또한 이해하기가 가장 어려운 곡이다. 그 만큼 높은 경지에
있기 때문에 웬만큼 훈련된 귀가 아니고서는 그 예술적 진가를 알아보기
힘들다.

함동정월의 예술성은 특히 진양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가락이 너무나
유식하게 짜여져서 참으로 난해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장단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분명 장단의 틀 속에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그 장단의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고집스럽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집스러움은 소리를 운용하는 방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의 산조는 그냥 한번 튕기고 나서 그냥 허공 중에 떠있는 소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왼손주법을 변화시켜 가면서 마지막 장단까지 끈질기게
그 소리를 다양한 여음으로 붙들어 놓는다. 그래서 그가 타는 진양조는
느린 속도임에도 불구하고 꽉찬 느낌을 준다. 소리의 포만감이라고나 할까.

산조를 시작하기 전에는 악기의 음을 조율하기 위해서 '다스름'이라는
것을 탄다. 소위 음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서양음악에서 악기를 조
율하는 소리가 음악외적인 것인데 반해 우리 나라의 다스름은 음악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과거 우리의 예술가들은 음을 조율하는 소리조차도 멋들어진
가락으로 담아 낼 정도로 강력한 예술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산조의 높은 예술성은 바로 이러한 예술의지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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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거문고 산조에 대하여

 

흔히 거문고는 '백악지장'이라고 한다. 즉, 모든 악기의 으뜸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거문고는 예로부터 다른 악기와 구별되는 각별한 취급
을 받아왔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이 악기를 소중히 여겼는가
는 현재 남아 있는 고악보의 대부분이 거문고 악보라는 사실로 충분히
입증이 된다.

궁중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물론이려니와 선비들이 사적으로 풍류를
즐기는 자리에서도 거문고는 항상 가장 높은 품격을 지닌 악기로 초대되는
행운을 누렸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거문고는 선비들의 악기라고 했다.

거문고 소리를 들으면 그 속에서 어떤 저력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음량이 그다지 크지 않고, 음색이 소박해서 처음 듣는 이에게 금새
어필하지는 못하지만 씹고 씹을 수록 제 맛이 나는 그런 소리라고 할 수
있다.

거문고 소리를 들으면 어째서 옛 선비들이 이 악기를 좋아했는지 금새
알게 된다. 가히 속(俗)스럽지 않은 품위와 안정감이 무언가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여백과 공간을 만들어 주는 여유를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배문화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오던 거문고가 소위
'속악(俗樂)'의 대열에 뛰어 든 역사는 그다지 오래지 않다.

아마 거문고는 자신이 오랜 세월 동안 지켜온 그 고귀한 자리를 버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여러 악기가 속악에서 자기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있을 때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 왕조 내내 양반의 명분과 유교적 이념에 얽매어 자신의 음악적
가능성을 충분히 시험해 보지 못했던 거문고는 19세기 말 경부터 서서히
반동의 증세를 보이기 시작해 20세기 초에 이르러 드디어 본격적인 속악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소위 속악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거문고 산조가 탄생한 것이다.
거문고 산조는 20세기 초에 거문고의 명인 백낙준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것의 자극제가 된 것이 가야금 산조였다.

가야금 산조의 눈부신 음색과 풍부한 음악성에 매료당한 백낙준은
거문고라는 악기로 산조를 탐으로써 악기의 품위를 떨어뜨렸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거문고 산조를 만들었다.

세인의 비난을 두려워 하지 않는 한 예술가의 용기가 거문고 음악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거문고 산조는 그 기본적인 틀에 있어서 가야금 산조와 내용을 같이
하고 있다. 악기의 음색이나 연주기법에서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가야금 산조와 거문고 산조를 들어보면 이 두 종류의 산조가 같은 근
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진양에서 시작해 점점 빨라지는 악장의 구조도 그렇고, 선율을
구성하는 원리 뿐만 아니라 어떤 부분에서는 가락의 흐름까지도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거문고 산조가
가야금 산조와 구별되는 자신의 특성을 전혀 안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음악양식이든 악기가 달라질 때에는 그 악기에 맞는 재창조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거문고는 가야금과는 달리 소위 괘라는
것이있어서 왼손으로 이 괘 위의 줄을 눌러 소리내는 악기이다.

그리고 일정한 괘 위에서 소리를 떨 때에는 줄을 위에서 아래로 미는
독특한 주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오른손으로는 술대라는 대막대기로
줄을 치거나 뜯어서 소리를 낸다.

물론 차이는 연주기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음색, 음량, 연주자세에
있어서도 거문고는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지키고 있다.

거문고 산조를 들어 보면 진양 부분이 가야금 산조 보다 조금 빠르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가야금 산조의 진양에서는 한 음을 길게 끌면서
왼손으로 다양하고 미세한 음들을 만들어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거문고 산조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에 거문고는 잔가락을 많이 써서 장단을 메꾸어 나간다. 그런데
이처럼 거문고 산조의 진양이 시가(時價)가 긴 음을 쓰지 않는 것은
이 악기의 여음이 그것을 허용할 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만약 느린 템포의 곡에서 음의 여운이 금새 사라져 버린다면 그 음악은
텅빈 공간으로만 가득찬 재미없는 음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거문고 산조에는 가야금 산조에는 없는 엇모리 장단이 끼어 있는 대신
휘모리가 없다. 그래서 자진모리로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이 자진모리의
가락도 가야금 산조의 것과는 다르다.

가야금 산조의 자진모리는 빠른 템포로 같은 음을 반복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여유있게 가락의 흐름을 이어나가는 부분이 많은데
거문고 산조에는 그런 부분이 별로 없다. 이는 술대로 동일음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치는 주법에 한계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거문고의 술대는 거문고 산조의 또 다른 가능성이다.강하게 술대를
내려칠 때에는 술대가 줄에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데, 이 타악기적인
부딪침이 소리의 다이나믹을 더 해 준다. 저음역의 개방현 역시 이런
효과에 한몫을 한다.

안정감 있는 베이스에 개방현이라 여음까지 풍부하니 금상첨화가
아닐수 없다. 높은 음역에서는 술대의 존재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여리고 섬세하게 타다가는 돌연 술대로 힘을 다해 내려침으로서 가락에
액센트를 주고, 개방현의 풍부한 여음으로 넉넉하게 바닥을 받쳐주는
멋, 이것이 바로 거문고 산조의 멋이 아닐까.

거문고가 속악의 영역으로 들어 왔다고는 하나 거문고는 역시 거문고이다.
즉, 악기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기품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인간의 감성에 보다 가까와지고 싶었던 거문?산조라는 음악양식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무한한 가능성의 세게로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속에서 고전적 이상과 낭만적 이상의 절묘한 조합을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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