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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안숙선

배우는 기쁨으로 억척 국악 인생 40년

 

대표 예능   소리> 명창

 

 

안숙선(명창)

당대 최고 명창들의 빼어난 바디를 골고루 빼내 독공 기법으로 소화해 내는 명창 안숙선.

 

 

대중의 인기와 부러움을 한몸에 안고 살아간다는 것. 우선은 인물치레를 꼽아야 되겠지만, 내용적으로는 그 봇물 같은 인기를 유지해 나갈 만한 자기 예술 분야의 깊이가 있어야 한다.

당대 최고의 주가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국악 예술인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여류 명창 안숙선(ㆍ45, 1949년 6월 3일생) 씨를 지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저만한 체구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까 싶은 야무진 성음, 가냘픈 몸매에다 빼어난 미모. 그야말로 대중들이 그를 선호하기에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1989년 12월부터는 가야금 병창(박귀희제) 준인간문화재로 지정받아 그녀의 앞날이 더욱 탄탄해졌고, 남편 최상호(ㆍ49)와 꾸려 가고 있는 가정도 원만하기 이를 데 없다. 아들(준환ㆍ25, 중대 국악과, 소리 전공)과 딸(영훈ㆍ18, 국악고 2년, 거문고 전공)도 국악에 소질이 있어 자신의 대를 이어 주고 수 년 전부터는 한양대와 서울예대에 나가 국악을 강의한다.

“배운다는 것은 기쁨이고 배울 수 있다는 건 행운입니다. 여덟 살 때부터 시작한 국악 인생이 40년 가까이 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도 훌륭한 선생님을 찾아 모셔 자꾸자꾸 보태 나가야지요. 강도근 선생님한테 우람장중한 동편 소리를 다시 떼받고 있습니다.”

전북 남원군 산동면 대상리에서 태어나 서울에 정착하기까지 안씨가 지켜 온 ‘국악 인생’은 다수의 국악인 모두가 그러하듯이 순탄치가 않았다. 세살 적 남원읍(현재의 남원시)으로 이사하면서 안씨의 유년 시절은 예술적 분위기에 빠져들게 된다. 여덟 살 때부터는 집에 자주 들르는 이모(강순영)한테 가야금 줄풍류 48장(영산회상) 등을 배우고 국민학교 입학과 함께 남원국악원에 들어간다.

국악원의 주광덕(, 소리 선생) 씨는 어린 안숙선에게 춘향가 중 이별 대목, 죽장망혜 등 단가를 학습시켰다. 정호동, 전사섭(, 설장구) 씨가 남원에 내려오면 기가 막힌 장구 가락을 익히기도 했다.

“외가 쪽의 민속악 대물림이 셌었나 봐요. 외삼촌이 가야금, 창에 뛰어났고 명창 강도근 씨는 외당숙입니다. 순영 이모 역시 가야금 산조는 물론 춤도 잘 춰 진주8검무, 민살풀이, 승무까지도 학습시켜 줬어요.”

어린 안숙선은 국민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창극 무대에 섰다. 아버지(안재관, 순홍 한씨)를 15세에 잃고 나니 어머니(강복순)와 함께 3남2녀의 여섯 식구 생계가 자신의 몫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른바 요즘 들어 자주 듣게 되는 ‘소녀 가장’이었다. 가는 곳마다 천재 소녀가 나타났다고 야단들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안숙선을 당대 명창들이 서로 제자를 삼겠다고 나섰다. 이 때부터 안숙선에게는 스승 복이 터지게 된다. 외당숙한테 다섯 바탕 소리(흥부가, 심청가, 춘향가, 적벽가, 수궁가)의 기초를 닦고 19세에 서울로 와 만정 김소희( ) 씨를 찾아갔다. 여자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소리로 흥부가, 춘향가, 심청가를 보태 넣는다.

“제대로 배워 놔야 당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요. 모든 선생님마다 그 분이 아니고서는 안 되는 특기 대목이 있습니다. 개인의 욕심 탓인지는 몰라도 공연 실황 등을 눈여겨보며 찾아가 배우겠다고 자청했습니다.”

박귀희 씨의 가야금 병창은 어릴 적 이모한테 익혔던 가야금 산조의 대를 이어 내고자 김소희 씨를 졸라 배우게 됐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안씨의 예술적 재능은 어느 것이든 주입만 시켜 주면 능히 소화해 냈다. 현재 준인간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이 때 학습한 가야금 병창이다.

전통 예술인들이 이 선생, 저 선생을 모셔 공부한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자칫하면 배우던 스승한테도 눈밖에 나 호된 꾸지람만 듣고 머쓱해지는 게 대부분이다. 전도가 촉망되는 ‘재목’이 있을 때마다 ‘기왕이면 내 제자로 삼겠다.’는 창악인들의 인지상정에서다. 여기에다 창악인끼리 상극 관계이거나 소원한 사이일 땐 사제지간 의리 단절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이후 안씨는 정광수(, 수궁가ㆍ삼고초려), 박봉술(, 흥부가ㆍ적벽가), 함동정월(, 가야금), 원옥화(, 강태홍제 가야금 산조), 성우향(, 보성소리ㆍ심청가) 씨 등을 스승으로 모시고 진수만을 넘겨받는다. 이래서 ‘안숙선의 소리’는 소절소절 바디가 옹골차고 내리깔리는 대목이 없다. 당대 명창마다의 바디와 맛을 자기화시켜 무대에 설 때는 속이 꽉 찬 소리만 내지른다. 여러 스승으로 인해 야기될 소리제의 난조를 그만의 독공 기법으로 극복해 낸 것이다.

안씨는 11명의 제자가 있다고 소개한다. 인간이 자식들을 통해 대를 잇듯 예술에도 틀림없는 생명력이 있어 성음과 악기를 통해 세월을 뛰어넘는다. ‘발림이 지나치면 춤’이라고 소리도 가르치고 가야금도 가르친다. 안선영(ㆍ21, 서울예전 2년), 황경화(ㆍ20, 한양대 국악과), 정미정(ㆍ28, 국립창극단원), 박금숙(ㆍ28, 국립창극단원), 김지숙(ㆍ21, 전북대 국악과), 김수영(20, 단국대), 신홍엽(20, 중앙대), 조기선(25, 서울예전 졸업), 이선희(17, 여의도고 1년), 이숙희(ㆍ35, 주부), 문명자(ㆍ38, 광주 도립국악단원) 씨 등이 서울 강남구 논현동집을 찾아와 배우는 중이다. 친동생 안옥선(ㆍ41) 씨도 국립창극단 기악부에 있다.

 

 

안숙선(명창)

제자들에게 철저한 목 다스림과 깍듯한 예의범절을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제자 정미정, 박금숙, 황경화(오른쪽부터).

 

 

“낮에는 명주 짜고 밤에는 베 짜듯 끊임없이 탁마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술에 대해 늘 겸손한 마음을 갖고 받아들여야지요. 언제나 넉넉한 심성 속에서 남을 편안케 해주는 예술이 농익어 나온다고 믿습니다.”

안씨는 소녀 때 국악원에서 배운 예의범절과 시조, 한문 등이 오늘날 예술 활동의 기본 자세가 되어 주고 있다고 다행스러워한다. 제대로 학습하기도 전에 박수부터 받아 온 자신이지만 혹시라도 자만이 깃들까 봐 항상 경계한다고 했다.

일본 등 아시아권 12개국, 미국ㆍ캐나다ㆍ콜롬비아 등 북남미, 유럽 7개국 12대 도시의 순회 공연 등 세계 여러 나라도 두루 섭렵했다. 그 때마다 안씨는 왜 한국인들은 ‘우리 것은 못한 것’으로만 알고 있는지 속을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뒤늦게나마 국악, 우리것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보편화되고 있어 마음이 놓이면서도 지나온 세월을 몰이해 속에 살아 온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다고 한다.

“어정판에 시럭(떡)을 먹어 봐야 제소리 낸다는 말이 있지요. 이래 저래 할말 다 하고 살 수 없는 게 인생이지만 역시 소리 예술은 타고나야 합니다. 앞으로 일생은 우리 것을 바로 지키기 위해 살아가려고 합니다.”

? 명창 안숙선 계보(번호는 배운 순서)

안숙선 본문 이미지 1

[네이버 지식백과] 안숙선 - 배우는 기쁨으로 억척 국악 인생 40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초판 1995., 4쇄 2006.,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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