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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http://blog.naver.com/kalliope63/11002504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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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gei Bortkiewicz 1877-1952, 세르게이 보르트키에비치- 러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천재에 대하여..

 

Sergei Eduardovich Bortkiewicz는 1877년 우크라이나 카르코프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린시절의 대부분을 카르코프 근처의   Artiomowka에서 보냈다..Bortkiewicz 는 상트 페테르부르그 음악원에서 Anatol Liadov 와 Karl von Arek 으로부터 배웠다...1900년에 상트 페테르부르그를 떠나 라이쁘찌히로 여행을 하엿으며, 그곳에서 리스트의 제자엿던   Alfred Reisenauer 와 Salomon Jadassohn의 제자가 되어 배웠다...1902년 라이쁘찌히 음악원에서 슈만상을 수상함으로써  학업을 마치고 1904년 러시아로 다시 돌아왔으며, 곧 여동생의 친구엿던  Elisabeth Geraklitowa와 결혼하고  독일로 돌아와 베를린에 정주하였다...베를린에서 그는 작곡에 심혈을 기울였다...

 

1904년 부터 1914년까지 보르트키에비치는 베를린에 살았으며, 여름 휴가에는 러시아의 그의 가족을 방문하거나 연주 목적으로 유럽을 여행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1년동안 그는 Klindworth-Scharwenka Conservatory에서 후학을 가르쳤으며, 그곳으로부터 그의 일생을 두고 우정을 나누엇던 네덜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였던  Hugo Van Dalen (1888-1967)와 만났으며, Hugo Van Dalen은 1913년 베른린에서 작곡가 자신이 지휘하는 Bluthner Orchestra 와 협연으로 보르트키에비치의 첫번 째  피아노 협주곡을 초연한 장본인이기도 하였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불행하게도 보르트키에비치의 삶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러시아인이었던 때문에 그는 처음 가택에 구금되엇으며 후에 독일에서 추방되어야만했다...그는 고향인 카르코프로 귀환했으며 그곳에서 음악교사로서 자신의 입지를 세우려하였으며 동시에 연주회를 가졌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발발로 보르트키에비치와 그의 가족은  공산당이 점령한 Artiomowka의 집으로부터 피난해야만 했다..1919년 White Army 에 의해 공산당이 물러가자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엇다...그러나 그것은 잠시 동안이었을 뿐 그와 그의 아내가 얄타로 여행을 떠난동안 그곳은 다시 공산당의 수중에 넘어가게 되엇으며, 그의 가족은   Artiomowka에 돌아올 수 없었다...붉은 군대가 장악한 땅에서 그의 어머니의 매부는 장티푸스로 혼돈속의  Novorossiysk에서 죽어갔다...그는 얄타로부터 탈출을 모색했고 탈출에 성공해 무일푼으로 1919년 이스탄불에 도착햇다...

콘스탄티노플에서 터키 황제의 궁정의 피아니스트인 Ilen Ilegey의 도움으로 보르트키에비치는 콘서트를 갖기 시작했으며, 다시 음악을 가르치는일을 하엿다..그의 이름은 터키의 많은 대사관 사이에 알려지게 되엇으며,  유고슬라비아 대사의 부인이었던  Natalie Chaponitsch와의 각별한 친분은 그의 작품 Trois Morceaux opus 24 (1922)를 그녀에게 헌정하도록 하였으며, 그녀는 그를 위해 대사관안에 음악 모임을 주선하기도 하였다...결국 그녀의 남편인 유고 대사 Chaponitsch의 도움으로 그와 그의 아내는 유고행 비자를 얻을 수 잇었다..Bortkiewicz와 그의 아내는 벨그라드를 거쳐 소피아에 도착했으며 그곳에서 오스트리아행 비자를 기다렷으며, 1922년 오스트리아에 도착하였다...

 

처음 그는 비엔나 대신 바덴을 선택했으며 그곳에서 1923년까지 머물럿으며, 이 후에  비엔나로 이주 이후 5년동안 비엔나에 머물럿으며 1925년 오스트리아 시민이 되었다...1928년 6개월간 파리를 방문햇으며 파리에서 돌아온 이후 그가 사랑하던 베를린에 정착해서 살앗다...1933년 모든 음악 프로프램으로 부터 그의 이름이 제외되는 등 나찌의 박해로 그는 다시 베를린에서 떠날수 밖에 없도록 강제되엇다..이와 같은 상황은 그를 비엔나로 다시 돌아가게했으며 그의 남은 여생을 그곳에서 보내야만햇다...이 시기에 그는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엿으며 그 때마다 그의 절친한 친구엿던  Hugo Van Dalen 은 수 차례 물질적인 도움을 댓가없이 주었다고한다,,

이시기는 그가 차이코프스키와 차이코프스키의 후원자였던  Nadjeschda von Meck 부인과의 사이에 오갓던 서신을 독일어로 번역 출판한 시기이기도 하였다...그의 친구  Hugo Van Dalen 은 보르트키에비치의 출판물을 네덜란드 독자들을 위해 네덜란드어로 번역 출판하엿다...

 

2차대전기간 (1939-1945)은 그에게 대단히 잔인한 시간이었다...전쟁의 말미인 1945년 12월 그는 그의 친구  Hans Ankwicz-Kleehoven 에게 쓴 편지를 통해 당시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지금 자네에게 편지를 쓰는 나의 침실은 너무 작고 비좁아 거동을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할 정도이며 , 난방은 가스 불로 조절해야 할 정도라네..당른 방들은 사용할 수 없으며 , 나는 거의 피아노를 만져보지도 못하고 잇는 형편이라네...이게 내가 처한 지금의 현실이네,,더 이상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고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우리 앞에 놓인 삶은 점점 더 실망스럽고 잔인하게 되어가고 있을 따름이네,,음악원은 실내온도 4도 밖에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수업을 하고 잇네,,곧 더 나빠지겟지"...

 

이 잔인한 시기동안에 그는 그의 Piano Sonata No. 2 opus 60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다.,,이 소나타는 1942년 비엔나의  Musikverein 의 브람스홀에서 초연되엇다.네덜란드에서는  그의 친구인 Hugo Van Dalen의 피아노 연주에 의해 1944년 암스테르담에서 연주되엇다...
 
2차 대전은  보르트키에비츠를 파산과 절망의 가장자리로 데려다 놓앗다...그의 작곡된 대부분의 스코어가 그의 작품을 전담 출판하던 독일 출판 업자(Rahter & Litolff)에 의해 보관되고 잇엇으나 독일 시내의 폭탄 투하로 말미암아 유실되었을 뿐 아니라 , 그의 작품을 팔아 보관중이던 수입역시 사라지고 말았다...그와 그의 부인은 2차 대전말에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었으며, 그의 친구였던 의사 Walter Zdrahal에 의해  비엔나의 Franz Joseph Hospital 에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1945년 보르트키에비치는 Vienna City Conservatory의 마스터 크래스의 감독으로 지명되엇으며 이는 그의 재정적인 안전을 어느 정도 보조해줄 수 잇는 것이 되엇다...이 기간동안 그는 Six Preludes opus 66 (1946-1947)를 작곡했다..이 작품은 전쟁 후에 그에게 음식과 의복을 보내주었던 네덜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Helene Mulholland 에게 헌정되었다..
1948년 은퇴 이후  Vienna 의 위원회는 그에게 영예의 연금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친구인 Hans Ankwicz-Kleehoven의 권유에따라 1947년 Bortkiewicz Society 가 비엔나에 창립되었다...동년 4월 창립식이 Schillerplatz Akademie 의  library hall 에서 있엇으며 1973년 The Bortkiewicz Society 는  해산되엇다...전쟁에 대한 공포와 충격으로 그의 아내는 조울증으로 진단받앗으며 , 그녀의 조울증은 그의 커다란 근심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곡가로서 보르트키에비치는 명망은 더욱 높아갔다.

1952년 Bortkiewicz Society 는 Ravag Orchestra 와 더불어 그의 75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음악회를 비엔나의 Musikverein Hall 에서 열엇다..보르트키에비치의 지휘와 Felicitas Karrer의 피아노 연주로 그의 Piano Concerto No. 1 opus 16 이 연주되엇으며 , Jaro Schmied 의 바이올린 연주로 Des Fruhlings und des Pans Erwachen - ein lyrisches intermezzo nach Gemalden von Sandro Botticelli” opus 44 가 연주 되었으며, 또한 이 콘서트에는 그의 Symphony No. 1 opus 52 “Aus meiner Heimat"이 포함되어 있엇다...

 

그는 때때로 복부의 불쾌감으로 고생했으며 그의 주치의의 충고에 따라 1952년 수술을 받앗으나 다시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동년 10월 비엔나에서 삶을 마감하엿다...그의 와이프와의 사이에 아이가 없엇으며 그녀는 그가 사망한 8년뒤인 1960년 비엔나에서 역시 삶을 마감하였다...

 

보르트키에비치의 피아노스타일은 상당부분 리스트와 쇼팽의 피아니즘에 기초하고 잇는 것이며,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초기 스크리아빈, 그리고 바그너와 러시아 포크 뮤직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20세기 음악의 경향에 흔들리지 않앗으며 그 스스로 자신을 모더니스트라고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한다...그의 작가 정신은 매우 꼼곰하고,그의 상상력은 감각적이며  다양한 색감을 가지고 있었다.그의 피아노 작법은 풍부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고안된 선율이 가지는 핵심적인 감성을 두드러져보이게하는 특징을 갖고잇다...그러나 보르트키에비치는 단순한 아류가 아니며, 그의 삶을 통해 얻어낸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서정적이고 애수적인 경향으로 이야기되는  전형적인 보르트키에비치 톤이라고 불릴만한 양식을 갖고 잇다는 사실을 금새 깨달을 수 있다..

 

그의 절친한 친구엿던 네덜란드출신의 피아니스트  Hugo Van Dalen의 도움에 힘입어 우리는 여전히 보르트키에비치의 음악을 즐길 수 잇으며, 그와의 사이에 오간 많은 편지를 통해서 작곡가의 삶에 대해 여러가지 것들을 알 수 있게되었다..

 

러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천재 세르게이 보르키에비치(1877-1952)는 낭만주의 러시아 피아니즘을 계승했던 작곡자이자 피아니스트, 지휘자로서 라흐마니노프의 라이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주목할 만한 그의 피아노 작품들은 쇼팽과 리스트, 브람스 스크리아빈 등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개성적인 필치로 러시아적인 정서를 실어낸 비르투오소 작품들로 반드시 들어보아야 할 레파토리다. 카차리스의 재기가 번뜩이는 음반.

 

보르트키에비치는 양차 세계대전과 나찌의 박해를 모두 받은 고난과 고단한 개인사를 가졌던 작곡가였으며 , 그의 그런 이력은 너무도 드라마틱하여

한편으로는 박해에 희생된 대표적인 작곡가의 한사람으로 꼽아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그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상트 페테르부르그 음악원에서 아나톨 리아도프의 제자로서 배웠다는 이력 이외엔 그의 음악가로서의 인생 전반을 유럽을 무대로 활동했던 작곡가였다...상트 페테르부르그 음악원을 졸업한 당시 상트 페테르부르그를 중심으로 러시아의 음악을 형성하고 잇던 음악가층은 서구적인 전통을 계승하던 모스크바 음악원과 대척점을 이루는 국민주의 음악의 산실로서 기능하던 때엿으나, 그러한 관점에서보면 독특하게도 그의 음악가로서의 인생은 오스트라아와 베를린을 중심으로 더욱 심화된 유럽음악의 진수를 탐구하려는 그의 노력이 20세기초의 어둡고 불안한 정황과 타협하지 못하면서 곡절많은 굴절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불운한 작곡가가 되었다..그렇게 따지자면 1차 대전과 2차대전의 전화의 와중에 생명을 보존하지 못하고 무모한 폭력 앞에 가녀린 꽃잎 처럼 희생되었거나 요절한 이들도 많았으므로  딱히 보르트키에비치만 불행했던 것은 아닐것다.. 

 

그는 생전에 베를린이란 도시를 사랑햇으며 그의 음악적 이상과 음악적 기반을 베를린으로부터 세우고 이루고자 하였으나 베를린은 두번씩이나 그를 차갑게 내몰고 말앗다..그렇게 치열하게 살 수 밖에 없엇던 강제된 고통과 횡포속에서 그를 음악가로서 거듭날 수 잇도록 희망을 던져준 것은 역설적으로 음악 자체였으며, 그러한 사실은 그의 삶가운데 매우 어둡고 함들엇던 시기에 작곡된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아무 댓가를 바라지 않았던 친구이자 피아니스트였던,   Hugo Van Dalen이란 존재였다...그러므로 ,어쨋거나 그의 작품과 삶은 그의 절친한 지기엿던 친구  Hugo Van Dalen의 조건 없는 우정에 일정한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보인다...

 

보르트키에비치의 음악은 우리에게 생소한 것이 틀림 없겟으나 앞서 이력을 통해 밝힌 바와 같이 그는 자신을 한번도  모더니스트라 여긴바가 없다고한다..그렇다고 그의 음악이 구태하거나 이미 잘알려진 대가의 음악어법을 다만 모방하고 모사하는 아류의 음악가라 할 수 없을 것이다...그의 작품은 분명히 낭만주의 음악 어법에 근거해 잇으며 리스트와 쇼팽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와 스크리아빈과 아울러 바그너와 러시아 민속적인 서정과 정서를 반영하고 잇으며 이러한 구체적인 정서의 토양위에 자신만의 독특하고  단단한 음악적 기틀을 세우고 잇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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