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국모 vs 대통령의 마누라?’ 라는 제목으로
생각을 정리해볼까 하는데 불쑥 가로 막는 얼굴이
있었다.
중학생 시절 광복절 아침, 며칠 동안 잡념으로 생긴
걱정거리로 엄니를 보챘다.
통학길 내내 큰 불편을 감수했던 지하철 1호선이 완
공되어 개통하는 날인데, 북한이나 다른 세력에 의해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불안
감이었다.
잠시 후, 같은 얘기를 두 번째 반복할 때까지 엄니도
일리가 없지 않다는 눈치로 함께 걱정하는 듯 했다.
다시 세 번째 반복할 때는 “설령 그렇다고한들 어찌
하겠누?“ 다소 짜증 섞인 반응이었다.
다행스럽게 지하철 개통현장에서 불미스러운 소식은
없었고, 철부지의 쓸데없는 잡생각의 해프닝으로 지
나치는 듯 했다.
그런데, 해가 질 무렵 쯤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괴한의 총기 피습 사건이 벌어
졌고, 이미 돌아가셨다는 뉴스였다.
비보와 함께 멀쩡했던 하늘에서 눈물 같은 비를 뿌
리기 시작했고 밤으로 가며 빗줄기가 굵어졌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버거운 죄책감이 억눌렀다.
“왜 아내가 죽나? 어짜피 죽을 거라면 남편이 죽었
어야지...“
마치 본능적으로 신음처럼 내뱉으며 벗어나고 싶었
지만, 그것 역시 말이 안되는 것 같고, 섣불리 떠들
었다간 큰 봉변을 당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인 채 끙끙거렸다.
전 국민의 슬픔 가운데 치러진 장례과정에서 동네
어머니들의 안타까운 두런거림에 기대어 가까스로
벗어났던 것 같다.
“벌의 댓가로 아까운 마누라 죽인 거지...”
“홀아비는 그렇다고 쳐도 어린 것들을 어쩌누...”
세월이 지난 뒤에 어떤 이는 이렇게 평가했다.
부인을 잃었을 때 그것이 하늘의 경고였다는 걸
깨달았어야 하며, 용서받기 어려운 악행과 실책의
대부분은 부인이 떠난 뒤에 저질러졌다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돌이켜 보건대,
한 나라의 정치꾼, 대통령 따위와는 차원과 격이
다른 인격체, 여인, 어머니이셨다.
생활과 시간 속에선 깜박 잊은 채 지내온 세월이
훨씬 많고 길지만 마음 속에서는 결코 지워질 수
없는, 내 아들과 그의 아들 마음 속에까지 전해
지고 새겨져야할 소중한 영혼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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