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 장르>
  • 방문 : 1/176명

http://totalmusic.saycast.com 주소복사

 

 

Side 1                     Side 2
01. Bonde                01. Lasidan
02. Soukora             02. Keito
03. Gomni                03. Banga
04. Sega                  04. Ai Du
05. Amandrai            05. Diaraby

 

당시 록계가 월드뮤직을 이해하던 방식에 코웃음을 치며 나온 이 거대한 앨범은

서아프리카 땅에 그래미상을 안겨줌과 동시에 블루스가 과연 미국의 것인가 하는 의문을 야기했다.
Ali Farka Toure의 유럽 진출은 자국의 방송국 라디오 말리를 위해 녹음한 레코딩이

어떤 연유인지 몰라도 아주 적절한 사람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비롯되었다.

이 녹음을 들은 뮤지션이나 DJ, 그리고 평론가들은

그의 음악이 블루스의 모든 요소에 맞닿아있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 음악은 미국 흑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주장하지만 Ali Farka Toure는 딱 잘라 부정한다.

오히려 아프리카 노예들이 이 전통적인 스타일을 미국에 이식시킨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런던의 월드 서킷 레이블은 곧바로 Ali Farka Toure를 섭외하여 녹음을 시작했다.

Ry Cooder가 여기에 합세했는데, 두 사람은 1992년 여름에 런던에서 우연히 만난 사이였다.

이 다음 단계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분명했지만,

Ali Farka Toure는 투어나 콘서트를 하는 것보다 아프리카에 있는 자기 땅에 머무르고 싶어했기 때문에

준비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아닌 게 아니라 Ali Farka Toure는 녹음실에서 나쁜 기운을 감지했다.

어릴 적에 음악적 재능을 준 악마에 씌웠던 그는 겁을 먹고 있었다.

산타 모니카에 있는 Ry Cooder의 집에서는 바다의 유령들을 화나게 할까봐 연주할 수 없었고,

할리우드의 녹음실에는 걸신들린 혼령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그는 즐거워 보였지만 내면 깊은 무언가가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고 Ry Cooder는 묘사했다.

다소 진정 국면을 맞았을 때 이 두 사람은 작곡과 편곡을 해가며 연주를 했는데

그들의 즉흥연주는 중요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기원이 어떻든 간에, Ali Farka Toure는 블루스를 완전히 체득하고 있었다.

답글 0조회수 2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