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 장르>종합
  • 방문 : 0/3,935명

http://skygentleman.saycast.com 주소복사

 

** 펌 from `하늘의입김`, (남) windgone [ ☞ 프로필 :  http://me.sayclub.com/profile/id/windgone ]

※ 해당 프로필, 2018-4-18일자, 게시글에서 퍼 왔습니다. 

 

 

======

 

"상상력은 언제나 꿈꾸는 동시에 이해하려 하니,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꿈꾸고 보다 잘 꿈꾸기 위해 이해하려는 것이다."


사진의 저 털보 할아버지 말이다.
인류사의 대표 털보 마르크스만큼, 아, 그만큼은 아니려나? 아무튼 인류 지성사에 어마어마한 자취를 남긴 사람이다..
저 할아버지 말 중에 이러한 말도 있다. 평소 누누이 아주 수도없이 강조하는 말로, 직접 인용은 아니라도 편의상 따옴표를 쓰자.

"한 손에 책을 펼쳐들고 또 한 손에는 펜을 들고,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나가야 한다."

이 말을 음악으로 가져와 내 식으로 풀자면, "두 귀를 스피커에 기울이고, 손에는 앨범 자켓을 들고 찬찬이, 아주 찬찬이 들어야 한다"쯤이 된다.
<정보의 반은 자켓에 있다.> 이게 내 지론이다. 그래서 펜 대신 자켓을 든다.

요즘 들어 음악에 관한 지식을 천대하는 풍조가 팽배한 듯하다.
"음악은 지식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프로파간다다.
일단 그럴듯하게 들리긴 한다. 그러나 가만 살펴보면 이처럼 반지성적인 말도 없다. 하물며 공격적인 느낌도 강하다. 또 그렇게 쓰이기도 한다.

 

인류사를 한 단어로 압축하면 <지식>이다.
그렇다 해서 음악에 지식을 앞세워서야 안 되겠지만 지식이 병행되지 못한 감상도 절름발이에 불과하다.
한편, <음악은 지식이 아니다>를 유달리 강조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며 느끼는 건 대개가 음악에 무지한 축들이란 느낌이다.
그래서 대개 저 말은 자신의 무지와 <나태>를, 그중에도 특히 나태를 은폐하기 위한 공격적인 기만의 언표로 들린다.

 

음악을 깊이 제대로 감상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한 노력과 투자는 비단 음악에서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란 것도 상식이다.
그런데 왜 음악에서만 유독 지식을 배척하는 풍조가 두드러지고 또 당연시돼 있을까?
다른 분야로 눈을 돌려보면 지식이 <지나치다>는 말을 듣기가 매우 어렵다. 당장 미술 분야를 보라. 지식으로 철철 넘쳐나 가히 숨막힐 정도가 아닌가?

 

정서의 영역이 지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래도 그곳에선 지식의 <지나침>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음악에서는 이토록 배타적일까?
내 진단은 "<유독> 음악 세상에만 공짜가 너무 많아져서 그렇다."이다.
들이는 투자라고 해봐야 듣는 시간과 듣는 노력(?)이 전부이다 보니, 그리고 이러한 부류가 대다수를 이루다 보니 그 결과 하향 평준화.대중화로 흘렀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짧게 쓰려다 길어져 버렸다. 저 할아버지 말 하나를 더 인용하며 마치자.

"약초의 여왕인 포도나무여, 이처럼 그대는 그 얼마나 자주 그대 휘하의 부드러운 시녀, 나무딸기의 향을 취했으며, 그대 강한 여종, 부싯돌의 향기를 머금었던가!*
포도주란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음미하며 마시는 철학자를 만나게 될 때 정녕 각별해지는 보편적인 것이로다."

 

마지막 말에서 <포도주> 대신 <음악>을 대입하면 곧 내 말이 된다.

 

*번역자 주) 포도주 향의 감별에 있어서 대표적인 목향(木香)과 광물향에 대한 언급

답글 0조회수 120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