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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 (출처는 하단 참조) 및 하늘신사 Recopied 작성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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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펌 및 Recopied] 13명이나 여성 멤버를 갈아치운 라나 에 로스포 (Lana Et Rospo; 개구리와 두꺼비)

 

라나에로스포 (Lana Et Rospo 개구리와 두꺼비) (이태리어)는 우리말로 ‘개구리와 두꺼비’라는 뜻이다.

 

1970년 5월 남녀 혼성 듀엣 뚜아에무아가 통기타 음악 최초의 창작곡 '약속'을 출반한 이후 한국의 통기타 음악계에 혼성 듀엣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뚜아에무아의 뒤를 이어 1971년 2월에 "라나에로스포"란 또 하나의 혼성 듀엣이 <사랑해>라는 곡을 대히트시키면서 그 바람은 속도를 더해간다. 당시, 혼성 듀엣의 유명세를 논하자면, 1968년 최초의 혼성 듀엣 서수남과 현혜정 이래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팀은 1970년 두 번째로 탄생한 뚜아에무아, 그리고 1971년 결성한 라나에로스포 정도였을 뿐이다.

 

라나에로스포의 리더 한민(본명 박윤기)[1942년 - 2006년]은 활동 당시 여복이 터진 가수로 뭇 남성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1970년 듀엣 결성 때부터 2005년까지 확인된 여성 파트너가 1대 은희를 시작으로 최안순, 오정선 등 무려 13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한민은 1968년 서울 종로 YMCA 옆 세기음악학원에서 기타 강사와 더불어 무명 통기타 가수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즉, 처음에는 커플즈라는 이름으로 여성 파트너를 찾았다. 1969년 한민은 여성 멤버(이름은 알 수 없다)를 맞이하여 커플즈라는 혼성 듀엣으로 새로운 활동을 이어가다가 세기음악학원의 오르간 강사로부터 은희를 소개받고 멤버를 교체한다. 1970년 5월 같은 음악학원에서 강사로 일했던 작곡가 김학송의 소개로, 미8군을 거쳐 명동 YWCA 청개구리 홀에서 미니 리사이틀을 열었던 여군 출신 김은희와 만난 것이다. 김은희는 1970년대의 인기 포크 가수로 널리 알려진 ‘은희’의 본명이다. 한민은 첫 파트너 김은희와 6개월간 연습 삼아 명동 YWCA 청개구리 홀에서 공연하면서 데뷔 음반 작업을 병행했다.

 

1971년 성음에서 발매한 혼성 듀엣 라나에로스포(개구리와 두꺼비)의 데뷔 앨범의 면면을 보면, 수록한 총 12곡 중 창작곡은 3곡이고, 나머지 9곡은 모두 감미로운 팝송 번안곡이다. 타이틀곡 <상처 입은 사랑>은 신중현의 창작곡이고, <사랑해>는 변혁 작사 작곡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그대는 떠나고>는 유진상의 창작곡이다.

 

이 음반의 최대 히트곡은 <사랑해>였다. <사랑해>는 혼성듀오인 '라나에 로스포 (Lana Et Rospoㆍ이태리어로 개구리와 두꺼비)'가 불렀던 노래이지만, 1971년 당대 최고 혼성포크 듀오 '뜨와에므와 (Toi Et Moiㆍ불어로 '너와 나'ㆍ이필원과 박인희)'가 붐을 일으키고 있던 때였고, '뜨와에므와'는 번안곡 위주의 앨범을 만들때 삽입된 곡(끼워 넣기식)이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였다. 

 

사실 이 곡은 1969년쯤부터 작사가와 작곡자가 미상인 채 대학가에서  한국판 '러브 스토리'로 널리 불리던 임자 없는 노래였다.  이 노래는 같은 대학 동급생 남녀가 열렬히 사랑하여 졸업 이후 결혼하기로 약속하였으나 여학생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연을 담은 노래였다. 라나에로스포가 음반을 취입하면서 처음 대중에게 알려져 화제가 된 이 노래의 작곡자는 당시 서강대생 변혁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헌데 노래가 히트하면서 “중앙대생 오경운이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애인을 두고 군에 입대한 후 그리움을 담은 노래”라는 애절한 사연이 알려져 당대 대중의 심금을 울리며 더욱 애창되었다. 이 노래는 창작자에 대한 의문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는데 “칸초네 곡으로 밝혀졌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에 대해 생전의 한민은 “작사 작곡 모두 당시 중앙대생 오경운으로 밝혀졌다”고 밝혔다.


포크송 <사랑해>는 한국 포크의 교과서로 고등학교 음악교과서 등재 등 한국 포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기념비적인 곡이며, 이들의 데뷔 앨범에 포함이 됐다. 이 노래가 국민애창곡이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 하나가 더해졌다. 1972년 8월31일~9월2일 평양에서 열린, 역사적인 첫 남북적십자회담 때 우리 측 '이범석' 수석 대표와 북측 '김태희' 대표단장이 손을 맞잡고 <사랑해>를 부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를, 매스컴에서 불을 붙여 놓자 국민적 관심이 폭발했다. 1972년 7월 4일. 중앙정보부장 이후락과 북한 부수상 박성철간에 발표했던 '7ㆍ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채 안된 시기였다. 남북 대표가 손을 잡고 합창한 최초의 노래가 <아리랑>이나 <우리의 소원 통일>이 아닌 <사랑해>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사랑해>를 부른 라나에로스포 멤버들을 청와대로 불러 치하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국내 대중 음악사에서 시대를 대변할 만한 노래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를 넘는, 대중적 인기를 넘는 노래는 없었다. 일반 대중노래로 시대적 상황에서 탄생됐던 노래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1926년)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1935년) △김정구의 <눈물젖은 두만강>(1936년)현인의 <신라의 달밤>(1949년) △현인의 <굳세아라 금순아>(1953년) △한명숙의 <노란 샤쓰입은 사나이>(1961년)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1963년)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1964년) △최희준의 <하숙생>(1966년) △남진의 <가슴 아프게>(1967년) △라나에 로스포의 <사랑해>(1971년) 등이다. 이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윤수일의 <아파트>, 김수희의 <남행열차>,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김건모의 <핑계>,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 등으로 집약할 수 있겠다. 이 외에도 필자(국소남, 통기타가수)가 놓쳐버린 음악들이 수없이 많겠으나 <사랑해>를 뛰어 넘는 대중가요(포크송 포함)는 없었다.

 

어쨌거나, 1963년 가요계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후 8년이라는 무명의 세월을 보내고 라나에로스포란 이름으로 자신의 시대를 맞이하기 시작한 한민은 이때부터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출발부터 여성 멤버의 역량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라나에로스포는 그 이후 13명의 여성멤버가 바뀌는 진기록을 수립한다. 1971년 한국 포크사에 기념비적인 데뷔 앨범이 탄생하고 파트너인 은희가 미8군무대에서 솔로로 독립하고난 뒤 파란만장한 멤버교체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열 세번이나 여성 멤버를 갈아치운 그 면면을 살펴 보기로 하자...

 

첫 번째로, 제주도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노래와 춤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당차고 미모를 자랑했던 은희(본명 김은희)는 1970년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서울에 와 살롱가에서 무명가수로 노래하고, 미8군 무대에서는 라틴송과 컨트리송을 부르며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은희는 한민과 듀엣을 결성하여 TBC-TV의 신인무대에서 팝송번역곡인 '태양의 파편'으로 첫선을 보였다. 한민의 남녀 혼성그룹 커플즈는 은희를 맞이하여 1970년 3월부터는 팀명을 라나에로스포로 바꾸고 1970년 6월에 문을 여는 '청개구리'에 드나들면서 통기타 음악인들과 교류를 시작하였고, 그때 만난 사람이 라나에로스포의 첫 음반에 실린 대히트곡 <사랑해>의 작곡자 변혁이었다. 1970년 8월 <사랑해>를 취입하고, 은희는 2주도 못 되어 팀을 탈퇴해버린다. 음반 발매 이후 <사랑해>가 히트하기도 전에 은희는 라나에로스포를 떠나 솔로 가수로 독립하는 바람에 라나에로스포와 은희는 각자가 다른 무대에서 <사랑해>를 부르는 신경전을 벌인다. 1971년 8월 발표한 자신의 독집 <꽃반지 끼고>가 대히트하며 은희는 더는 라나에로스포의 그늘에 의지할 필요가 없는 정상급 가수로 발전해나갔다.

 

두 번째로, 숙명여대 작곡가 출신의 장여정과는 2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장여정은 두 달 정도 연습만 하다 탈퇴해버렸다.

 

세번째 KBS 합창단 지휘자인 장상덕씨의 추천으로 만난 최안순. 1971년 5월 예그린 합창단 출신 최안순을 맞이하여 1971년 9월에 2집을 발매했지만 10월에 최안순마저 팀을 떠나버렸다.(6개월 같이 활동.) 라나에로스포는 당시, 포크 가수로서는 파격적인 50만 원의 계약금을 받고 지구레코드로 스카우트되었다. 1971년 9월 부랴부랴 2집을 발표해 <소리> 등 여러 곡을 히트시켰다. 그러나 최안순도 한민과 음악적인 의견이 맞지 않는다며 6개월 만에 솔로로 독립해 나가버렸다. 최안순은 1972년 6월 <산까치야>가 히트하면서 역시 솔로 가수로서 입지를 구축한다. 

 

네번째는 서울 합창단 출신 이경란.

 

이렇게 많은 여성 멤버가 견디지 못하고 탈퇴한다는 것은 한민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라나에로스포를 거쳐간 여성가수들은 한결 같이 한민에 대해 사생활을 지나치게 간섭하여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했다.
 

다섯번째는 동아방송국 미모의 성우 출신인 오정선(1년 6개월)과 활동하다 탈퇴한다. 그녀는 '혼성듀오는 결혼할 사이라면 좋을 것 같다'는 의미있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오정선은 <마음>이란 노래를 내놓으며 분가를 선언했다. [다른 자료 : 혼성 듀엣 라나에로스포 출신인 오정선은 TBC 동양방송의 성우 출신 미녀 여가수이다. 솔로 가수로 번안 곡 <마음>을 히트시킨 그녀는 말솜씨가 뛰어나 MBC-TV 「토요일 토요일 밤에」 사회자로 발탁되어 이덕화와 더블 MC를 맡았고 TBC FM 「가요 앨범」의 디제이로도 맹활약했다. http://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52062&cid=58276&categoryId=58607 ]

 

여섯번째는 1973년 TV드라마 '꿈나무'의 주제가를 불렀던 유리시스터즈의 '강인원'과 그룹 피노키오의 리더 권오진과 함께 5인조 그룹 'Young & 라나에 로스포'를 결성, 음악적 변화를 시도했다.

 

이후 일곱번째 허니비 씨스터즈의 조성자.

 

여덟번째 여고시절 등 6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영화배우 출신의 이애순과 '고독'이라는 타이틀의 앨범 발표했다.

 

계속 여성 멤버가 바뀌면서, 한민의 모친이 하도 답답해 점을 보았더니 여성 멤버가 한민보다 키가 큰 것이 문제라는 진단이 나왔다. 1976년 7월 한민(162cm)보다 키가 작은 유경숙(157cm)이라는 새로운 여성 멤버를 9번째로 맞이하여 심기일전을 다짐했으나 점괘는 맞아 들어가지 않았다.

 

아홉번째 교회 성가대 출신의 유경숙.

 

열번째 안혜숙.

 

열한번째 하사와 병장의 이동근 소개로 만난 영등포여고 출신의 윤수정이었다.

 

열두번째는 2001년 초 라이브 업소에서 만난, 제주 출신의 김희진이 마지막 파트너였다. 한민은 1980년 솔로 음반을 발표하여 트로트풍의 '어차피 떠난 사람'을 조금 히트한 바 있다. 그 뒤로도 라나에로스포의 여성 멤버는 계속 교체됐고 한민은 12번째 멤버로 김희진을 맞아들여 음반까지 발매했으나 2006년 세상을 떠남으로써 여성 멤버의 교체는 끝날 수 있었다.

 

열세번째는 2005년 친딸 박윤정 이다.

 

당시 한민은 "음악을 할 만하면 탈퇴해서 괴로웠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애궂은 구설수 때문에 괴로워 했고 애정문제로 바라보는 눈길 때문에 죽을 심정이라고 술회한 바 있다. 그는 훗날 은희와 최안순이 최고의 파트너였다고 했다. 2005년 친딸인 박윤정과 활동하다 2014년 뇌출혈로 세상과 이별하고 만다. 허나 어쩌랴! 열두번의 멤버교체(친 딸 제외), 그것도 기록이라면 기록인 것을….

 

뚜아에무아는 남녀가 비슷한 음악적 역량을 가졌고 화음 또한 환상적이었으나 활동에 소극적이어서 업적을 많이 남기지는 못했다. 그에 비해 라나에로스포는 여성 멤버의 역량에 많이 의존한 바람에 멤버 교체가 심했지만 뚜아에무아보다는 대중적으로 더 알려졌고,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수면 아래에 머물던 한국의 통기타 음악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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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1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98922&cid=58276&categoryId=58282

* 출처2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61220.22023185545

* 출처3 : http://www.jnilbo.com/read.php3?aid=1499266800527277358

* 출처4 :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3&dirId=30104&docId=189619086&qb=6rmA7Z2s7KeEIOudvOuCmOyXkOuhnOyKpO2PrA==&enc=utf8§ion=kin&rank=5&search_sort=0&spq=0&pid=TT3B9spySDVsssFeQZGsssssszo-468622&sid=moAtNhtlpUnwrvM6txsN0g%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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