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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ttp://www.usabriefing.net/bilingual/binfo.cfm?upccode=NYF57ADEDA-2#.WQsQcreweUk

 

 

폴 로브슨 이야기: 흑인 인권위해 노래한 세계적 흑인 가수 (후편1 of 4)

PAUL ROBESON, 1898-1976: SANG SONGS TO SUPPORT BLACK RIGHTS (후편1 of 4)

 

Now, the VOA Special English program, PEOPLE IN AMERICA. Today, Shirley Griffith and Steve Ember finish the story of the life of Paul Robeson. He was a singer and international political activist.

 

이것은 미국의 소리 스페셜 영어 프로의 ‘미국 사람들’ 시리즈 기사입니다. 오늘은 셜리 그리피스와 스티브 앰버가 폴 로브슨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끝마치겠습니다. 그는 가수이자 국제적 정치 운동가 이었습니다.

 

By the late nineteen twenties, Paul Robeson had become the most highly praised black actor and singer of the time. During the nineteen thirties, he became involved in national and international movements for peace, equal rights for black Americans, and better labor conditions. He traveled around the world singing his songs to support these struggles. However, his friendship with the Soviet Union brought strong opposition from conservative groups in the United States.

 

1920년 후반에 폴 로브슨은 그 시대에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흑인 배우이고 가수였습니다. 1930년대에 그는 평화를 위한, 그리고 미국 흑인의 평등과 보다 나은 노동 조건을 위한 국내의 그리고 국제적인 운동에 가담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투쟁을 돕기 위해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노래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의 소련과의 우호관계는 미국의 보수파 단체들의 강한 반대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Many people in the United States opposed Robeson's political beliefs as too liberal or extreme. As early as nineteen forty-one, American government agencies, led by the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reportedly had targeted him as dangerous. They considered his political activism to be against the best interests of the American government.

 

미국의 많은 사람들은 로브슨의 정치이념이 지나치게 진보적이거나 또는 극단적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미 1941년에 FBI를 필두로 한 미국의 정부 기관들이 그를 위험인물로 지목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의 활발한 정치 활동이 미국 정부의 이익에 배치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During World War Two,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were allies fighting against Nazi Germany. Robeson recorded several Russian songs to honor the Soviet people's defense of their land against the Nazi invasion. These recordings were broadcast in the Soviet Union.

 

제2차 대전 동안 미국과 소련은 독일의 나치와 싸우는 동맹국가 이었습니다. 로브슨은 나치의 침략에 대항하여 싸우는 소련 국민들을 찬양하는 몇 개의 러시아 말 노래를 녹음하였습니다. 이 음반들은 소련에서 방송되었습니다.

 

Many Soviet soldiers were said to have heard Paul Robeson's voice before going into battle. This is one of those songs. It is called "Native Land."

 

많은 소련 군인들이 싸움터로 나가면서 폴 로브슨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그때의 노래 중의 하나입니다. 그것은 “조국”이라는 노래였습니다. (출처: VOA) (번역: ⓒ 2008 www.usabriefi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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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http://www.usabriefing.net/bilingual/binfo.cfm?upccode=NY9C1969D1-5#.WQsP5beweUk

 

폴 로브슨 이야기: 흑인 인권위해 노래한 세계적 흑인 가수 (후반3 of 4)

PAUL ROBESON, 1898-1976: SANG SONGS TO SUPPORT BLACK RIGHTS (후반 3 of 4)

 

In nineteen fifty, the American State Department withdrew Robeson's travel document because of the political ideas he expressed. This prevented him from leaving the United States to perform in other countries. The State Department said his travel to other countries would not be in the best interest of the United States.

 

 1950년에 미국 국무부는 로브슨이 표명한 정치적 이념 때문에 그의 여권을 취소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해외 연주를 위해 미국을 떠나는 것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국무부는 그가 외국에 나가는 것이 반드시 미국에 이롭지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Robeson also was barred from performing in many places in the United States. His concerts were canceled. His records were withdrawn from stores. Record companies refused to produce new recordings of his songs. Robeson said the actions against him were attempts to silence artistic expression. He said they were attempts to control whom people could hear and what they could hear.

 

로브슨은 미국 안의 여러 곳에서도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의 음악회들이 취소되었습니다. 그의 음반들이 가게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레코드 회사들은 그의 노래를 새로 녹음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로브슨은 그에 대하여 취해진 조치들은 예술적 표현을 막으려는 시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러한 조치들은 사람들이 어떤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어떤 소리를 들을 것인 지를 통제하려는 시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In nineteen fifty-two, the Mine, Mill and Smelters Workers Union of British Columbia, Canada, invited Robeson to attend its yearly meeting. Americans do not need a passport to enter Canada. But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barred him from entering Canada anyway. So the union invited him to sing at an outdoor concert in the United States.

1952년에 로브슨은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럼비아 성의 광산, 제강 및 제련소 노동조합으로부터 그들의 연례 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습니다. 미국인들은 캐나다에 가는데 비자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여하튼 그가 캐나다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리하여 노동조합은 그를 초청하여 미국 내의 야외 콘서트 장에서 노래를 부르게 하였습니다.

 

The concert was held at Peace Arch Park. The park is in the northwestern state of Washington, on the border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Robeson sang to more than thirty thousand people in both countries. Here is a recording from that concert. Robeson sang a famous labor union song called "Joe Hill." 이 음악회는 피스 아취 파크 (평화 아치 공원)에서 열렸습니다. 이 공원은 미국 서북부의 워싱턴 주에 있으며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국경에 면하고 있습니다. 로브슨은 두 나라를 합해서 모두 3 만 명의 청중 앞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음에 들으실 것은 그 음악회에서 녹음한 것인데 로브슨은 “"조우 힐" 이라는 유명한 노동조합 노래를 불렀습니다.

 

Robeson performed at another outdoor concert at Peace Arch Park the following year. At the end of the program, Robeson spoke to the thousands of people attending. He promised to continue the fight for freedom as long as he could. Here is part of that speech. 로브슨은 그 다음 해에 피스 아취 파크에서 열린 또 다른 야외 음악회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프로그램을 마친 후 로브슨은 거기 참석한 수천 명 앞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힘을 다해서 계속 자유를 위해 싸우기를 약속했습니다. 여기서 그 연설의 일부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출처: VOA) (번역: ⓒ 2008 www.usabriefi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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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http://www.usabriefing.net/bilingual/binfo.cfm?upccode=NY5C76B34A-5#.WQsQ5beweUk

 

폴 로브슨 이야기: 흑인 인권위해 노래한 세계적 흑인 가수(후편4 of 4)

PAUL ROBESON, 1898-1976: SANG SONGS TO SUPPORT BLACK RIGHTS(후편 4 of 4)
 
Nineteen fifty-eight was an important year for Paul Robeson. His regained his passport that year after a Supreme Court ruling on a similar case. The Supreme Court ruled that the State Department could not withhold passports of American citizens because of their suspected beliefs or the groups they joined.
1958년은 폴 로브슨에게 중요한 해 이었습니다. 그는 그 해에 미국 대법원에서 내린 비슷한 사건의 판결이 내려진 후에 미국 여권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대법원은 국무부가 미국 시민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의심스럽다거나 어떤 단체에 속했다는 것을 이유로 그의 여권을 안 줄 수는 없다는 판결이었습니다.
 
A book he wrote about his life, "Here I Stand," also was published. And, that same year, he performed in a concert at the famous Carnegie Hall in New York. It was his first appearance there in eleven years. Every seat in the hall was filled. Paul Robeson sang an African American spiritual called "Didn't My Lord Deliver." Here is a recording from that concert. 그는 그의 일생을 그린 책 “내 입장은 이것이다”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또 같은 해에 그는 뉴욕의 유명한 카네기 홀에서 음악회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11년만의 첫 출연이었습니다. 음악회장의 좌석은 모두 찼습니다. 폴 로브슨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영가 “우리 주님이 약속대로 주시지 않았던가”(Didn’t My Lord Deliver)를 불렀습니다. 여기 그 음악회 때 불렀던 그 노래를 들어보세요.
 
Paul Robeson and his wife Essie moved to London where he continued to sing and act. They also visited the Soviet Union often. In nineteen sixty-three, they returned to the United States. Paul Robeson was suffering from physical and mental problems. He retired from public life because of his bad health. Paul Robeson died in nineteen seventy-six, in Philadelphia, Pennsylvania. 폴 로브슨과 그의 부인 ‘에시’(Essie)는 런던으로 이사하였으며, 거기서 그는 노래와 연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들은 소련을 방문했습니다. 1963년에 그들은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폴 로브슨은 육체적 및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쁜 건강 때문에 공적 생활에서 은퇴해야 했습니다. 폴 로브슨은 1976년에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In nineteen forty-nine, Paul Robeson had written these words: "I shall take my voice wherever there are those who want to hear the melody of freedom or the words that might inspire hope...in the face of...fear. My weapons are peaceful, for it is only by peace that peace can be attained. The song of freedom must prevail." 1949년에 폴 로브슨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 나는 자유의 음률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거나 공포에 직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말을 해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떤 곳이라도 가서 노래를 부를 겁니다. 나의 무기들은 평화적인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평화로 하는 수밖에는 없으니까요. 자유의 노래가 후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출처: VOA) (번역: ⓒ 2008 www.usabriefi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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