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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리스탄 이야기는 켈트인(人)의 옛 전설을 소재로 하여 12세기 중엽에 프랑스에서 이야기로 엮어졌는데,
그 사랑과 죽음의 강렬함과 아름다움 때문에 거의 전(全)유럽에 보급되어 서구 연애문학의 전형이 되었다.

리발렌왕의 아들로 로누아의 왕자 트리스탄은 태어나기 이전에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는 그를 낳고 얼마 안 있어 죽었다.
그리하여 트리스탄은 백부인 콘월(Cornwall)의 왕 마크에게로 간다.

콘월에서 지용(智勇)을 겸비한 젊은 기사로 성장한 그는 아일랜드의 거인 몰오르트(Morholt)를 쓰러뜨리고 국난을 구했다.
하지만 트리스탄은 독이 묻은 무기에 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병세가 악화된 트리스탄은 의술이 뛰어난 아일랜드의 이졸데 공주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트리스탄은 이졸데의 도움으로 상처를 회복하고 돌아와 마크왕에게 이졸데를 왕비로 들이기로 마음을 먹는다.

콘월국의 대사로서 아일랜드에 파견된 트리스탄은 이졸데에게 마크왕의 의사를 전달하였다.
이졸데는 콘월의 왕비가 된다는데 마음이 이끌려 마크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잉글랜드로 떠나게 된 둘은 여행 도중 백부의 아내가 될 미녀를 찾아 아일랜드에 가서 용을 퇴치하고
왕녀 이졸데를 데리고 개선하는 도중, 해상에서 시녀의 실수로 마크와 이졸데가 마셔야 할 '사랑의 묘약' 를 마심으로써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다.

그것은 사랑과 죽음의 음료로, 이를 마신 자는 하루를 못 만나면 병이 나고 사흘을 못 만나면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졸데는 마크왕의 왕비가 되었으나 연인인 트리스탄과 항상 만나고 있었다.
이같은 관계에도 불구하고 이졸데는 마크의 왕비가 되었으며 그 후 둘은 비밀스럽게 만났다.
왕실에는 악의에 가득 찬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마크왕은 처음에는 이런 소문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둘의 밀회는 오래가지 않아 발각되었고, 트리스탄은 마크왕의 분노를 피해 브리타니(Brittany)로 떠났다.
잉글랜드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된 트리스탄은 이졸데가 자신을 잊었다고 생각하여 동명이인인 이졸데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브리타니국의 공주 '흰 손의 이졸데'(Isolde of the White Hands) 였다.

결혼 후에도 트리스탄은 이졸데를 잊지 못해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여행을 떠났다가 또 상처를 입는다.
병세가 악화된 트리스탄은 자신의 상처는 첫사랑의 연인만이 치료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트리스탄은 이졸데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에게 급히 와달라는 전갈을 보냈다.
그는 이졸데를 데려올 경우 배에 흰 돛을 달라고 하고, 실패할 때는 검은 돛을 달도록 지시하였다.

이졸데를 실은 배는 흰 돛을 달고 항구로 들어왔으나, 질투심에 가득한 그의 아내는 트리스탄에게
검은 돛이 올려져 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트리스탄은 이졸데가 오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낙담 끝에 죽고 말았다.
배에서 내린 이졸데는 거리의 통곡과 교회의 종소리를 듣고 어리둥절했으나, 곧 트리스탄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졸데는 사랑하는 연인의 시체에 입을 맞추고 자신의 영혼을 놓아버려 슬픔 속에 죽었다.
두 연인의 부음을 들은 마크왕은 급히 바다를 건너와 브리타니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는 양쪽에 둘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어느 날 밤 트리스탄의 무덤에서 자라 나온 가시나무 덩굴이 예배당을 넘어 이졸데의 무덤에까지 가 닿았다.
농부는 여러 차례 가지를 잘라주었지만 가시덩굴은 다시 자랐다.
이 이상한 일은 마크왕에게까지 보고되었고, 그는 가시덩굴을 다시는 자르지 말도록 하였다.

이 이야기의 원형은 오늘날 남아 있지 않으나 1170~1180년대에 토마와 베를르라고 하는 두 시인이 이를 고쳐 썼고, 그 단편(斷片)이 남아 있다
.

독일에서는 12세기 후반에 아일하르트 폰 오베르크가 베를르의 이야기와 거의 같은 이야기를 썼고
또한 13세기 전반에는 고드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가 토마의 이야기를 번안하였다.
이 토마의 이야기는 노르웨이와 영국에서도 번안되어 오늘날에도 그것이 남아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이 이야기가 발라드풍(風)으로 고쳐 써졌고, 또한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의 산문이야기의 번역이 남아 있다.
.

이 비련은 후세의 시인이나 작가의 흥미를 불러일으켜, 극과 이야기 등으로 쓰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 바그너의 악극이다
.

콕토(Cocteau, Jean, 1889-1963)는 이 이야기를 '영원한 회귀'(L'eternel retour, - 回歸) 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였다.
.


덧붙여 말하면 트리스탄의 이름은 노란블란드에 사는 픽트인(Picts 人)의 왕 이름 드로스탄(Drostan)에서,
이졸데는 아일랜드의 해적왕의 딸 에시르트에서 유래하고, 이 두 인물을 콘월의 왕 마크와 결부시켜 전설화한 것은 웨일스 인(人)이라는 추정도 성립된다.
.

현대어로 번역된 것으로는 프랑스의 중세학자 베디에(Charles-Marie-Joseph Bedier, 1864-1938)가 편집한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야기'(1900)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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