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의 복도 /마경덕
그때 수많은 생각이 아파트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지
복도는 복도를 떠나 살 수 없으니까
뒤따라오던 복도는 돌아보면 걸음을 멈추었지
뒤죽박죽 무거운 저녁을 끌고
아침은 없을 거라고 중얼거렸지
세상의 끝에 닿았을 때
눈치 빠른 복도는 그때마다 구석을 가리켰어
입이 무거운 복도는 믿을 만했지
날마다 36.1명, 자신을 포기한 죽음이 통계에 오르고
그 숫자에 빠졌다가,
빠져나왔다가
누군가 먼저 난간을 다녀간 흔적 앞에서
그림이 되지 못하는
얼룩을 한 점 더 그려야 하나
달빛이 기울듯 결심이 기울고
복도는 저편으로 걸어가고 있었지
재빨리 방향을 바꿔 복도는 걸어가고 있었던 거야
복도가 걸어갔다면 누가 믿겠어
하지만 분명 앞서 걷기 시작했어
복도의 끝에서
한 여자가 마지막 신발을 벗기 전에
ㅡ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상상인,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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