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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를 벗은 비너스

뒤샹(Marcel Duchamp)이 남자용 소변기에 ‘사인’을 하여 <샘(Fountain)>(1917)이라는 작품으로 변용시켰듯이 피에로 만조니(Piero Manzoni)의 <살아있는 조각(sculpture vivante)>(1961)은 인간의 몸에 ‘사인’하여 살아있는 조각으로 변용시켰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은 엄밀하게 말하면 ‘일시적’ 빌려 쓰기는 아니라고 말이다. 이를테면 ‘사인’이 곧 ‘작품’을 가능케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사인 없이 인간을 일시적으로 빌려 쓰기만 하여 작품을 제작한 작가가 있다. 바네사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가 바로 그 인물이다.

 

 바네사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 1994 Galerie Schipper & Krome, Koln

1994년 바네사는 독일 쾰른의 갤러리(Galerie Schipper & Krome, Koln)에서 개인전을 열렸다. 당시 그녀는 30명의 젊은 여자를 전시장 안에 ‘전시’해 놓았다. 그런데 관객은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전시장 밖에서 마치 핍쇼(peep show)를 보듯 구멍을 통해 전시장에 전시된 쭉빵걸들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구멍을 통해 전시장에 전시된 쭉빵걸들은 노랑 머리에 검정 구두와 스타킹 그리고 회색 팬티, 검정색이나 회색 상의를 착용했다. 흥미롭게도 그녀의 퍼포먼스는 단수가 아닌 복수의 모델(?)을 전시한다는 점이다.

 1995년 제네바 갤러리(Galerie Analix, Geneva)에서 오픈했던 바네사의 개인전에는 3명의 모델이 등장했다. 검은 코트를 입고 있는 두 명의 모델은 의자에 앉아 관객을 향해 바라보고, 그녀들 뒤에 백색 팬티와 브라만 착용한 빨강머리 모델 한명이 서있었다. 1997년 런던의 현대미술회관(Institute of Contemporary Art, London)에서 개최되었던 바네사의 개인전에는 4명의 여자가 팬티를 벗고 회색 상의만 입고 검정 힐을 싣고 걸어 다녔다. 1998년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에서 열린 바네사의 개인전에 처음으로 상의와 팬티까지 벗은 알몸의 모델이 등장한다.

 바네사의 작업은 일종의 ‘퍼포먼스’이다. 그녀는 미술관이나 화랑의 전시장에 조각한 사람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을 ‘전시’한다. 따라서 관객이 보는 작품은 다름 아닌 관객과 같은 사람이다. 단지 작품(의 사람)은 옷을 입은 관객과는 달리 ‘알몸’으로 있을 뿐이다. 1994년 퀠른 전시 이후 바네사는 작품(모델)의 상의를 벗어던지고 급기야는 팬티까지 벗는 ‘알몸’으로 변화된다.

 

 

바네사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 2001 쿤스트할레 빈(Kunsthalle Wien).

 2001년 쿤스트할레 빈에서 열린 바네사의 개인전에 등장한 모델들은 블랙 부츠를 싣고 마치 군인들처럼 사열하는 모습으로 서 있다가 앉아 있기도 하다가 과감하게 누워 두 다리를 벌리는 핫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그녀들의 주변을 둘러싼 관객들은 그 장면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편적인 사례를 보아서 알 수 있듯이 바네사는 모델들에게 일정 시간동안 마치 조각처럼 요동하지 않는 포즈를 취하도록 요구한다. 따라서 바네사가 선정한 모델은 일종의 ‘레디-메이드’인 셈이다. 하지만 바네사의 ‘작품’은 전시가 끝나면 모두 ‘일상(일반인)’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바네사가 선정한 인간(모델)은 만조니의 모델과는 달리 ‘일시적’ 빌려 쓰기로 제작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만조니의 모델도 일상으로 돌아가서 생활한다. 하지만 만조니의 모델 허리에는 (마치 소나 돼지에 ‘낙인’이 남아 있듯이) ‘사인’이 남아 있다.

 그렇다고 바네사의 퍼포먼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바네사는 전시기간 중 그녀의 작품(모델)을 촬영한 사진(Digital C-print)을 남긴다. 그렇다! 바네사의 퍼포먼스에 출현한 모델들은 박제된 사진(이미지)로 남는다. 문득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피그말리온(Pygmalion)의 조각상이 떠오른다.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타락한 여성들의 행태를 보고 결혼하지 않기로 맘먹었다. 그러나 그가 여성 자체를 혐오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지상의 헤파이스토스’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자신의 조각 솜씨로 여인 조각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여인상은 백색의 상아로 만들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고, 마치 살아있는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로 정교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피그말리온은 이 여인상에 바다의 님프인 ‘갈라테이아(Galatea)’라는 이름을 명명했다.

장-레옹 제롬(Jean-Leon Gerome)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Pygmalion and Galatea)> 1890년경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조각한 갈라테이아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여인상은 체온이 없는 차가운 상아 조각상이었기 때문에 사랑을 나눌 수 없었다. 피그말리온은 아프로디테 축제 때 그 여인상과 같은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아프로디테는 그의 마음을 헤아려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장 레옹 제롬(Jean-Leon Gerome)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Pygmalion and Galatea)>는 생명을 얻은 갈라테이아가 피그말리온과 함께 뜨거운 키스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흥미롭게도 갈라테이아의 상체는 사람의 체온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되어져 있는 반면, 하체는 백색의 상아 조각상으로 그려져 있다. 이를테면 백색 상아 조각상이 키스를 통해 차츰 인간으로 변신한다고 말이다.

 

 

바네사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 2008 SPASIMO, PALERMO ITALY

 2008년 이태리에서 행한 바네사의 ‘알몸’ 퍼포먼스는 마치 현대판 갈라테이아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바네사는 알몸의 모델들에게 대리석 누드조각처럼 분칠을 하고 전통적인 조각의 상징인 백색의 받침대 위에 위치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 물론 바네사는 그녀의 모델들에게 전통적인 누드 조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있는 포즈를 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누워있는 포즈를 요구했다. 그런데 백색의 받침대 위에 누워있던 조각이 갑자기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두말할 것도 없이 바네사의 퍼포먼스에 등장한 모델들은 만조니의 모델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조각’인 것이다.

 단편적인 이미지를 보아서 알 수 있듯이 바네사의 퍼포먼스는 미술관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뒤샹이 소변기를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이용하여 작품(‘샘’)으로 변용시켰던 것처럼 바네사는 살아있는 사람을 미술관의 ‘문턱’을 넘어 전시장에 전시하는 작품으로 변용시킨 것이 아닌가?

http://dynews.co.kr/detail.php?number=88698&thread=12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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