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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허스트- 현존하는 작가들 중에서 가장 작품값이 비싼 작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살아있는 누군가의 마음 속의 불가능한 물리적인 죽음(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당 필자, 지난 연재에서 철재와 유리로 제작된 탱크에 포르말린과 상어를 넣은 데미안 허스트의 <살아 있는 누군가의 정신 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인 불가능성>(1991)에 대해 언급했다. 그런데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제작되기 6년 전인 1985년 제프 쿤스는 농구공 3개를 마치 어항처럼 보이는 탱크에 넣은 작품(완전한 평형을 이룬 세 개의 공이 들어 있는 탱크)을 제작했다. 그렇다면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제프 쿤스의 ‘공산품’을 ‘수산품’으로 자리바꿈시킨 것이 아닌가? 이를테면 뒤샹과 워홀 그리고 앙드레와 플래빈 또한 쿤스와 스타인바흐의 작업들은 한결같이 ‘생산품’에 주목한 반면, 허스트는 ‘동물’을 일종의 ‘레디-메이드’로 보았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 이미 여러분들께서 감 잡았듯이 ‘인간’이다. 그 점에 관해 데미안 허스트는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나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사람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소 대신 사람을 통째로 잘라서 전시할 수 없지 않나. 인체로 할 수 없는 작품을 동물로 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허스트가 인체를 모델로 삼은 작품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1996년 데미안 허스트는 과학교재용 인체해부모형을 6m 높이의 브론즈로 ‘뻥튀기’한 조각 작품 <찬(송)가(Hymn)>를 제작했다. 그런데 허스트는 험브롤(Humbrol)사의 인체해부모형을 표절했다고 비난을 받았다. 그래서 허스트는 타협을 위한 방법으로 자선기관에 기부금을 기부함으로써 배상을 했다고 한다. 왜 데미안 허스트는 인체해부모형을 모델로 삼았을까? 혹 그는 사람을 소처럼 잘라서 전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체해부모형을 모델로 삼았던 것이 아닐까? 왜 허스트는 인체를 조각으로 만들어 반을 자르지 않고 기존의 인체해부모형을 모델로 삼았던 것일까? 혹 인체해부모형이 마치 잘라진 소처럼 인체의 내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제프쿤스(Jeff Koons) <완전한 평형을 이룬 세개의 공이 들어있는 탱크 (There Ball Total Equilibrium Tank)>1985
하지만 허스트의 <찬(송)가>와 험브롤사의 인체해부모형과 차이가 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인체해부모형은 분리된다. 이를테면 머리는 반으로 갈라지고 소뇌 등 안의 구조를 볼 수 있게 분리되고, 몸통 역시 간이나 대장, 심장 등 하나하나 분리된다고 말이다. 그러나 허스트의 <찬(송)가>는 분리되지 않는다.

데미안 허스트는 10년 후 다시 사람을 모델로 삼은 작품을 제작한다. 국제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가 그것이다. 데미안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는 18세기에 살았던 유럽 남성의 두개골을 경매를 통해 구입하여 2156g의 백금으로 도금하고, 그 표면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만든 작품이다. 8601개의 다이아몬드는 1106.18캐럿이고, 그 작업을 제작하는데 지출된 총 비용은 1200만 파운드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당신이 보아서 알 수 있듯이 허스트는 이마의 센터에 졸라 큰 핑크 다이아몬드를 박아 놓았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신의 사랑을 위하여 (For the Love of God)> 2007
지난 2007년 8월 30일 런던 화이트큐브 갤러리는 일명 ‘해골’로 불리는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해서>를 한 투자그룹에 1억 달러(약 940억원)에 판매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허스트는 2005년 일명 ‘상어’ 작품을 헤지펀드 매니저인 스티브 코헨에게 1200만달러에 판매해 현존하는 작가들 중에서 가장 작품값이 비싼 작가가 되었는데, 2007년 일명 ‘해골’을 1억 달러에 판매해 자신의 최고가를 경신한 작가가 되었다.

 

왜 허스트는 ‘해골’을 사용한 것일까? 혹 그는 인체해부모형에 만족하지 못해 인체 대용으로 해골을 사용한 것은 아닐까? 허스트는 <신의 사랑을 위하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죽음의 상징인 두개골에, 사치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를 덮어 욕망 덩어리인 인간과 죽음의 상관관계를 조망하고 싶었다.”

지난 연재에서 살펴보았듯이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들은, 그가 ‘죽음’에 대한 작품을 꾸준히 제작해 왔음을 알려준다. 어디선가 데미안 허스트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나는 왜 많은 사람들이 의문도 갖지 않은 채, 약은 완전히 믿으면서 예술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지 이해할 수 없다.”

예전에 사람들은 의심 없이 신(종교)를 믿었지만, ‘신의 죽음’ 이후 사람들은 예술을 신의 자리에 위치시켰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는 ‘약’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 데미안 허스트의 생각인 것 같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이 의문 없이 믿는 것은 약(과학)이기 때문이다. 데미안 허스트는 1990년대 <약국(Pharmacy)>으로부터 시작하여 2000년대 <바륨(Valium)> 그리고 <죽음의 춤(Dance of death)> 등 약과 관련된 작품을 제작했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약국 (Pharmacy)>1992
삼성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데미안 허스트의 <죽음의 춤>은 거울처럼 반사되는 스테인리스 스틸과 유리로 만든 캐비닛의 선반들에 다양한 색깔과 앙증맞은 모양의 2만개가 넘는 (석고, 합성수지로 만든) 알약들이 관객의 시선을 유혹한다.

그러나 약은 죽음을 해결할 수는 없다. 물론 약이 삶을 잠시나마 연장할 수 있을지언정 결국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 혹 데미안 허스트는 의문도 갖지 않은 채 약(과학)을 믿는 것처럼 종교나 예술도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왜 우리가 예술을 과학처럼 믿어야만 한단 말인가?

데미안 허스트의 <죽음의 춤>은 우리의 시선을 유혹한다. 허나 먹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각종 알약들은 시각으로만 먹을 수 있는 ‘예술-약’이다. 한 마디로 <죽음의 춤>은 ‘그림의 떡’이라고 말이다. 만약 당신이 그 예술-약을 눈으로 먹는다고 하더라도 죽음은 해소되지 않는다. 두말할 것도 없이 예술은 과학이나 종교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죽음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죽음 앞에 무기력한 우리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바륨(Valium)>2000
그 점은 우울증 치료제와 신경안정제인 디아제팜(=Diazepam)의 상품명을 작품명으로 차용한 데미안 허스트의 판화작품인 <바륨>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데미안 허스트의 <죽음의 춤>은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무기력한 우리에게 위안을 주기 위한 작품이란 말인가?

소낭구 ---

 

죽음앞에서 위안 받을 수많은 꺼리들중 이빨로 무장한 현대 예술품의 비중은 내게는 한줌의 모래 무게만큼도 안되지 싶다. 살아오며 겪은 산전수전의 경험들로부터 얻은 자신의 신념에 의한 가치만이 죽음을 그나마 편안히 받아 들일수 있음이 아니겠는가....

어릴적 사춘기 시절 자살 충동을 느꼈을때 이소령의 정무문이 피카디리에서 개봉하고 스카라에서 당산대형을...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광화문 국제극장에서 용쟁호투를 상영했을때  마지막 삶에서 용쟁호투만큼은 꼭 보고 죽어야겠다는 위안을 가졌던것을 보면 죽음 앞에서의 위안꺼리는 개개인의 처한 입장에 따라 작용되는것들이지 싶다.

 

데미안 허스트?....이빨로 중무장한 사기였다라고 본인이 실토하고 죽는다면 그를 찬양했던 사람들은 어떤 자세들을 취할까?.... 이미 과거에도 침팬지가 휘둘러친 막그림에 속았던것처럼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는 피카소가 자신의 유언장에서 이 모든 상황을 비웃었다는 가정에서 나왔다. 키숀에 따르면, 실제로 재능으로 충만했던 피카소는 대가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저 뭔가 자극을 원하는 시대와 영합했을 뿐이고, 이 유언장에서 그러한 자신에 대해 고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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