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음악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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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부처님의 생애 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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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교화의 터전 라자가하

5) 계율의 제정



녹야원의 다섯 수행자,
깟사빠 삼형제,
사리뿌따와 마하목갈라나
그리고 마하깟사빠,

이들이 교단에 참여하는 데는
부처님의 한마디면 충분했다.

“오라 비구여.”

그 후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터전을 잡고
수많은 출가자와 재가자들이 교단에 들어오면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맹세했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법에 귀의 합니다.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

그런데 승가의 규모가 커지면서
시끄러운 문제들이
승가 내부에서 새로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큰 소리로
거리를 누비며 음식을 구결하고,
걸식한 음식을 두고 찬탄하거나 타박하며,
승방으로 돌아와 잡담으로
시끄럽게 떠드는 이들이 생겨났다.

가사를 입은 모양이 단정치 않고,
걷고 서고 앉고 눕는 모양새를
제멋대로 하는 이들도 있었다.

비구의 자질이 부족한 이,
수행자의 기본예절조차
지키지 않는 이들이 나타났다.

또한 물과 젖처럼 화합하며
서로를 보살피라는 당부에도 불구하고
종족과 출신을 따지고
관습에 따라 행동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부처님 께서는
승가의 위계와 질서를 유지하고,
당신의 눈과 귀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출가하는 이들의 자질을 염려해
입단 절차를
제도화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따라서 비구가 되기 위해선
구족계(具足戒)를 받도록 하고,
계의 조목을 하나하나 정비해 나가셨다.

구족계를 받으려는 자는
먼저 자신의 화상(和尙)을 선택해
평생 스승으로 모시고,
세속의 아버지와 아들처럼
서로를 보살피고 돌보게 하셨다.

화상은 제자에게
필요한 덕목들을 가르치고
행동 하나하나를 지도하며
필요한 물품들을 마련해주게 하였고,
제자가 병들면
그의 신변을 보살피고
식사까지 돌보게 하셨다.

제자는 화상을 섬기고
의식주 모두에 걸쳐
마음을 써서 불편이 없도록 하며,
세수와 목욕에서부터
식사. 청소. 빨래에 이르기까지
화상의 일을 거들어 주도록 하셨다.

화상을 정해 수학한 이만이
스승인 화상의 보증 아래
비구가 될 자격을 가지게 하셨다.

또한 승가의 한 사람으로서
완전한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승가의 동의를 구하게 하셨다.

승가 구성원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출가하려는 당사자와
그의 보증인이 될 화상의 이름을 거론하며
대중의 뜻을 묻게 하셨다.

대중에게 세 번을 물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경우에만
승가가 동의한 것으로 인정하고
비구가 지켜야 할
계목들을 일러주며 출가를 허락하셨다.

화상을 정한 다음에도 문제는 발생하였다.

그의 화상이
다른 고장으로 떠나버려 홀로 남겨지거나
환속하거나 죽거나
다른 종교로 전향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이럴 때를 대비해 아사리 제도를 만들었다.

아사리는
화상이 곁에 없는 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스승과 제자로서
서로를 돕고 보살피게 하였다.

부처님은
출가의 조건이나 출가 후 생활에 있어서
계급과 재능의 차별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비구는 같은 복장에
같은 규율을 지키며 생활하도록 하셨다.

따라서 승가 안에서
위계와 질서의 기준,
즉 좌석의 차례를 정하는 방법은
한 가지 뿐 이었다.

그것은 바로 구족계를 받은 순서였다.

따라서
구족계를 받을 때는
당사자와 화상의 이름은 물론
장소와 의식을 집행하던 상황,
날짜와 시간까지 정확히 기억하도록 하셨다.

구족계가 제도로서 확립되자
그에 따른 세부 규정들도 보완되었다.

라자가하에서 우빨리(Upali)라는 청년이
열여섯 명의 친구와 함께
마하목갈라나에게 출가하였는데,
나이가 어렸던 탓에
시도 때도 없이 추위와 굶주림을 호소하였다.

그들 열일곱 명은 추위와 굶주림,
사람들의 모욕을 견디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이를 아신 부처님은
성년, 즉 만 스무 살이 넘은 사람에게만
구족계를 주도록 정하셨다.

미성년자도 출가는 허락되었지만
그들은 정식 비구로 인정되지 않았다.

비구들의 지도와 보살핌을 받도록 한 그들을
사미(沙彌)라 불렀다.

지켜야 할 계의 조목 또한 끊임없이 정비되었다.

초기에는
출가생활의 기본 방침으로
4의지(依止)를 일러주었다.

즉 출가 수행자는
걸식하는 생활에 의지하고,

출가 수행자는
분소의를 입는 생활에 의지하고,

출가 수행자는
나무 아래에서 좌선하는 생활에 의지하고,

출가 수행자는
동물의 대소변을 이용해 만든 진기약(陳棄藥)을
사용하는 생활에 의지한다는 정도였다.

또한 초기의 제자들은 일일이 규제 하지 않아도
마땅히 지켜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출가자가 늘어감에 따라
마땅히 지켜져야 할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 상활이 발생했다.

범행(梵行),
즉 일체의 성행위를 금하는 것은
부처님 교단은 물론
니간타를 비롯한 다른 교단의 출가 수행자들도
기본적으로 지키던 의무사항이었다.

그러나
이런 기본 사항들조차 지켜지지 않는 일이
교단 내부에서 발생하게 되었다.

갖가지 사건들을 계기로
살생. 거짓말. 도둑질 등의 사회 윤리부터
부처님 교단의 특수성을 반영한 세부 조항까지
구족계의 항목들은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승원 생활을 터전으로
구족계는 끝없이 정비되었고,
계를 지킴으로써
교단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보름에 한 번씩
일정 지역에 거주하는 승가 구성원들은
의무적으로 한자리에 모여
계경(戒經)을 낭송하고
잘못을 고백하며 참회하는
포살(布薩)의식을 행하게 하셨다.

그 외에도
승가에는 많은 규정들이 생겨났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안거(安倨)이다.

삼 개월에서 사 개월 동안
비가 지속되는 우기(雨期)에는
한곳에서 정착해 생활하며
외출과 유행(遊行)을 삼가는 풍습이
인도 대부분 지역에 있었다.

다른 교단들 역시
초목을 밟거나 동물에게 피해를 주기 쉬운
이 시기에는 일정한 곳에 머물게 하였다.

라자가하를 중심으로 교단이 성립되던 무렵
비구들은 우기에 구애되지 않고
포교를 위해 분주히 여러 곳을 다녔다.

그러자
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부처님께서 안거 제도를 마련하셨다.

우기 동안에는 한곳에 거주하며,
질병과 재난 등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출하는 일이 없도록 금하셨다.

그 기간을
스승과 장로들로부터 가르침을 듣고
수행에 매진하는 시기로 삼게 하신 것이다.

우기가 끝날 무렵이면
다음 포교 활동을 위해
신자들로부터
옷감을 보시 받아 가사를 만들고,
발우가 깨어졌으면 새 발우도 마련하였다.

안거 마지막 날에는
안거를 함께한 이들이
모두 모여
그동안 보고 듣고 의심한 허물들에 대해
토로하고 참회하는
자자(自恣)의식을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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