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음악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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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부처님의 생애 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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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평화와 평등의 가르침

2) 진리의 어머니 위사카



언젠가 부처님께서
앙가의 밧디야(Bhaddiya, 跋提)를
방문하셨을 때,
할아버지 멘다까(Mendaka)의 심부름으로
부처님을 초청하러 온
일곱 살 어린 소녀가 있었다.

영특했던 소녀의 이름은
위사카(Visakha)였다.

꼬살라국의 빠세나다대왕의
요청으로
마가다국 빔비사라대왕은
멘다까의 아들 다난자야를
사께따로 이주시켰고,
위사카는 아버지 다난자야를 따라
사께따로 오게 되었다.

다난자야는
열여섯의 꽃다운 위사카를
사왓티의 부호인
미가라(Migara)의 아들
뿐나왓다나
(Punnavaddhana)와 결혼시켰다.

백만장자였던 다난자야는
딸을 사왓티로 보내며
오백 대의 수레에 보배를 가득 실어
지참금으로 함께 보냈다.

성대한 결혼식이 치러진 다음이었다.

미가라는
새로 들인 며느리를 자랑하고,
집안의 융성을 기원하기 위해
수행자들을 초대했다.

“성자들을 초대했으니,
네가 직접 음식을 준비하여라.”

다음 날 아침,
위사카는 사왓티에서의
첫인사를 위해
비단 휘장을 내리고 곱게 단장하였다.

“저희 집에
새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축복해주소서.”

시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휘장을 걷던 위사카는 깜짝 놀랐다.

니간타 교도들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도
능청스럽게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길을 피해
위사카는 얼른 휘장을 내렸다.

놀라기는
시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어서 나오너라.
성자들께 인사를 드리지 않고 뭐하느냐?”

“아버님,
부끄러움도 모르는 이들에게
저는 예배할 수 없습니다.”

나체 수행자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부잣집 며느리를 들여
좋으시겠다 싶었더니,
집안 망칠 여자를 들이셨군.”

시아버지는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우유를 넣어 요리한
맛있는 음식을 잡숫는 시아버지 곁에서
위사카가 부채질하고 있을 때였다.

걸식하던 비구가
미가라 장자 집을 찾아왔다.

문간에 서서
조용히 기다리는 비구에게
미가라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위사카는 당황했다.
집안의 주인인
시아버지의 지시를 받지 않고는
식은 밥 한 덩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자리를 바꿔 앉으며 눈치를 주었지만
미가라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식사를 계속하였다.

위사카는 부채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비구에게 다가갔다.

“용서하십시오, 스님.
저희 아버님은 묵은 것만 잡수십니다.”

시아버지는 진노했다.

새로 지은 음식이 아니라
드릴 수 없다는 의미로 생각할수도 있지만
‘묵은 것’이란 말 속에선
‘썩은 것’
‘배설물’ 이라는 뜻도 있었던 것이다.

미가라는 법정에 재판을 청구했다.

엄청난 지참금을 가지고 온
며느리를 함부로 쫓아낼 수는 없었다.

정당한 사유 없이
며느리를 쫓아내면
지참금의 배를 물어주어야 했다.

그러나 시부모와 남편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한 며느리는
지참금을
돌려주지 않고 쫓아낼 권리가 있었다.

사왓티의
저명한 바라문
여덟 명 앞에서 위사카는 해명하였다.

“묵은 것만 잡수신다고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시아버님을 모욕 한 말이 아닙니다.
시아버님은 걸식을 위해
비구가 문전에 서 있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현재 누리는 복록은
모두 과거에 지은 공덕의 결과입니다.

시아버님은 과거에 지은 복록으로
맛있는 음식을 드시면서
새롭게 복덕을
쌓을 생각은 추호도 없으셨던 겁니다.

그런 뜻에서
묵은 것만 잡수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법정의 판결이 내려졌다.

“위사카의 언행은
며느리를 쫓아낼 사유가 되지 못한다.
며느리를 돌려보내려면
미가라는 지참금의 곱을 반환하라.”

집으로 돌아온
미가라는 방문을 닫아버렸다.
방문 앞에
위사카가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법정까지 찾아가 잘잘못을 가린 것은
행여 ‘잘못이 있어 쫓겨났겠지’
하는 오명을 쓸까 두려워서입니다.

이제 저의 결백이 밝혀졌으니
저 스스로 이 집에서 나가겠습니다.”

위사카는 하인들을 불러
수레를 준비시키고
아버지 집에서
가져온 보배를 다시 싣게 하였다.

타고 온 가마에 오르는
위사카의 옷자락을 미가라가 붙잡았다.

들어온 보배가
나가는 것도 아까웠지만
가만히 있을 다난자야가 아니었다.

법정의 판결에 따라 지참금만큼
자신의 재산을 덜어주면
자신은 알거지나 다름없었다.

“아가,
내가 잘못했다. 나를 용서해다오.”

“저는
부처님과스님들을 뵙지 않고는
하루도 지낼 수 없습니다.

제가 원할 때 언제든지
부처님과 스님들을 초청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면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은 위사카는
다음 날 당당히
부처님과 비구들을 집으로 초청하였다.

이번에는
시아버지가 휘장을 내려버렸다.
비구들을 존경하지 않을뿐더러
조금도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며느리가 못마땅했다.

공양이 끝나고
부처님의 설법이 시작되었다.

휘장 너머로 들리는
부처님의 설법은 가슴을 울렸다.

자기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던
미가라는 법문이 끝날 무렵
휘장을 걷고 나와 머리를 조아렸다.

“세존이시여,
이토록 위대한 분
이시라는 걸 미처 몰랐습니다.

이토록 제가
어리석은 줄 미처 몰랐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소서.
부처님께서 하락하신다면
미가라가 목숨을 다하는 날까지
삼보를 공경하는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시아버지인 미가라가
며느리에게 공손히 합장하였다.

“진리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게 한
너는 나의 어머니이다.”

미가라는 그날부터 며느리를
‘나의 어머니’라 부르며 존경하였고,
집안의 재산권을 모두 위임하였다.

사람들은 위사카를
‘미가라의 어머니
(Migaramata, 鹿字母)라 불렀고,

교단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그를
승가 대중도 존경해
’어머니 위사카‘라 불렀다.

늘 삼보에 대한
공경심을 잃지 않았던 위사카는
언젠가 부처님 앞에서 간청하였다.

“저에게
여덟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부처님,
사왓티에 머무는 모든 비구들께
제가 우기에 입을
가사를 보시하도록 허락하소서

부처님,
사왓티에 찾는 모든 스님들에게
제가 첫 번째
공양을 올리도록 허락하소서.

부처님,
사왓티를 떠나는 모든 스님들에게
제가 마지막
공양을 올리도록 허락하소서.

부처님,
사왓티에서 병을 앓는
스님들의 공양을
모두 제가 올리도록 허락하소서.

부처님,
사왓티에서 병을 간호하는
스님들의 공양을
모두 제가 올리도록 허락하소서.

부처님,
사왓티에서 병을 앓는
스님들의 약을
모두 제가 올리도록 허락하소서.

부처님,
사왓티에 머무는 모든 스님들에게
제가 아침마다
죽을 올리도록 허락하소서.

부처님,
사왓티에 머무는 모든 비구니들게
제가 목욕 가사를
보시하도록 허락하소서.”

나날이 가세가 번창한 위사카는
이후 막대한 자금을 들여
천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대규모 정사를 건립하였다.

그리고 그 정사를
부처님 교단에 기증하였다.

사왓티 동쪽 성문 밖에 위치한
그 정사를 사람들은
동원정사(東園精舍,Pubbarama)
라고도 부르고,
녹자모강당(鹿字母講堂,
Migaramatupasada)이라고도 불렀다.

굳건한 신심과 아름다운 선행
그리고 빛나는 지혜로 칭송받은
우바이는 위사카 만이 아니었다.

위사카처럼
개종을 강요하는
시집의 압력을 굴복하지 않고
결국
시댁 식구 모두를 삼보에 귀의시킨
수닷따 장자의 딸
쫄라수밧다(Culasubhadda),

남편의 구박과
살해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한결같이
“여래. 응공. 정변지께 귀의합니다”
를 되뇌었던 다난쟈니(Dhananjani),

병들어 죽어가는
비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살을 베어 먹인
오라나시의 숩삐야(Suppiya)와

마하세나(Mahasena)장자의 아내,
설법을 잘 했던 앙가자(Angaja),

늘 조용히 정사를 찾아
주변을 청소하고
허물어진 곳을 수리했던 위말라(Vimala),

승가를 받들고
외호한 우바이들의 정성은 눈물겨웠다.

그들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승가를 받들었고,

겸양과 헌신으로
승가의 세심한 곳까지 보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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